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1:41
땀 흘리는 우리 국악 ('04. 6.22. 정현빈) |
최근 음악시장에 리메이크 바람이 분다고 한다. 유명 가수들이 신곡이 아닌 예전의 명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하거나 그 맛과 감동을 유지하면서 단순히 색깔만을 바꾸어 다시 상을 차려 내놓는 것이 유행이며 그 시도가 제법 성공적이란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극심한 음반시장의 불황이 도사리고 있음이니 한편으로는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가 않다. 이 분위기가 계속되다보면,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명작은 아니더라도 훌륭한 창작물들이 서서히 고갈되어 사라질 것이고 앞으로 영영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욱 염려스럽다.
며칠 전에 참 반가운 음악 공연이 있었다. 국악 관현악단 초청 연주회였는데 순천 같은 소도시에서는 대편성 국악 관현악단의 연주를 직접 접하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문예회관을 찾았다. 마치 된장국이나 청국장처럼 좋아했지만 직접 연주를 접할 기회를 많이 누리지 못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무려 두 시간 전에 도착한 공연장에는 벌써 수 백 명의 인파들이 몰려 있었다. 거의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그 중에 상당수는 동원된 듯 하였으나 공연에 대한 기대감만큼은 대단했다. 요즘 TV에서는 온통 젊은이들 취향의 방송만이 황금시간대를 점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껴오던 차에 매우 반가운 공연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연주가 시작될 무렵, 여기저기 빈자리들이 서서히 채워지면서 염려스러웠던 광경이 벌어졌다.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공연물의 경우 대부분 그렇듯이 동원된 관객,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강제 동원된 학생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와 어김없이 빈자리를 채웠다. 공연 내내 시끄럽게 잡담하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학생들에게도 분명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문이었을 것이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보려고 끝까지 이성과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깨물었을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매우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다.
물론 강요에 의하여 동원된 학생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것을 계기로 예술적인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 분명 재고의 필요성이 충분하다 하겠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국악관현악단과 사물놀이의 협연으로 소개된 ‘신모듬’에서는 한 가지 가능성이 보였다. 비오듯 쏟아지는 이마의 땀방울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신명나는 국악의 세계로 인도해준 그 연주는 망나니 같아 보였던 학생들의 시선까지도 꽁꽁 붙들어 맬 정도로 감동적인 환희를 안겨 주었다. 희망이 보이는 마지막 영역인 음악, 그것은 분명 내게 있어서 종교 그 이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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