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Miles Davis- Autumn Leaves
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1:48
Miles Davis- Autumn Leaves ('04. 9.21. 정현빈) |
짚신을 신고 밤나무 아래에서 알밤을 까는, 아찔하고 따끔한 꿈을 꾼 날, 하루 종일 밤을 얻어먹었다. 며칠전의 일이며 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 이 가을에는 틀림없이 살이 찔 것 같아 좋다. 그 날 얻은 밤을 다 모았으면 족히 반 가마는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 복을 많이 받은 날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삶은 밤을 호호 불면서 파먹는 맛이란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군침이 돌 정도의 토실토실한 꿀맛이다. 그런데 매번 삶은 밤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 감탄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커피 숟가락의 효용가치에 대한 것이다. 마치 삶은 밤을 파먹을 때 쓰라고 만든 것 같은 커피숟가락을 생각하면 입가에 묘한 웃음이 일렁인다. 이렇게 완벽한 안성맞춤이 또 있을까?
그러나 풍성해야할 수확의 계절에 거두어들이지 않아도 될 수확물들이 귓가를 어지럽히고 있어 반겨 맞아야 할 가을이 문턱부터 씁쓸한 냉기가 흐른다. 병역비리 수사망에 걸려든 수확물들은 차라리 알밤을 감싸고 있는 밤송이 가시만도 못하다는 생각에 손가락질조차도 하기 싫고 그 무슨 게이트에 걸려는 유명 나리들은 변함없이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인 부인과 더불어 고고한 자태로 국민을 향해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철모르는 하품이 조소를 대신한다. 하지만 삶은 밤과 커피숟가락 같은 절묘한 안성맞춤이 가슴에 녹아들어 묘한 흥분이 이는 계절이라 온 여름 내내 가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산을 내려오고 있는 이 풍요로운 가을에, 삶은 밤, 그리고 커피숟가락, 감탄사, 뒤 이어 딱 어울리는 음악 한 곡을 턴테이블에 건다면 그것은 단연 ‘Autumn Leaves’일 것이다.
각자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 기호가 있을 것이다. 좀더 청순한 가을을 맞고 싶은 여인들은 Nana Mouskouri를 찾을 것이고 단풍만큼이나 이 가을 화려하게 타고싶은 연인들은 Edith Piaf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갈망할 것이다. 오랜 향수와 함께 지긋이 눈감는 가을이 그리운 이들에게는 Nat King Cole과 Pat Boone의 ‘Autumn Leaves’가 알밤처럼 구수한 맛을 제공해 줄 것이며 Bill Evans의 그것은 차라리 깔끔한 넥타이 선물 같을 것이고 Stanley Jordan의 기타에 실려온 낙엽은 차라리 싱싱한 토란 잎 같아서 그 위에 맺힌 이슬이 오히려 더 영롱하여 서글픈 가을이 될지도 모르겠다. Stan Getz와 Wynton Marsalis는 비단의 부드러움과 무명의 투박함에 함께 녹아있는 애틋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Richard Clayderman은 봄을 위해 예비해 두길 바라고 Placido Domingo의 그것은 차라리 흰 눈이 내리면 들어보길 권한다.
그러나 Miles Davis의 ‘Autumn Leaves’는 이 가을에 꼭 들어야 하리. 어쩌면 수년동안 미루어 왔던 그 쑥스러운 고백을 하게 될 만큼 옆구리가 많이 시려올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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