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해뜨는 집 - 뉴올리언스에 있다

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11

해뜨는 집 - 뉴올리언스에 있다
('05. 9.12. 정현빈)

재즈를 듣는다는 것은 수준 높은 음악을 듣는 것이며 재즈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꽤 여유 있고 운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재즈는 절망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슬프다. 뉴올리언스는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과 스윙 감으로 특징 지워지는 재즈의 선율이 넘쳐흐르는, 그래서 한 동안 꿈속에서도 그렸던 곳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의 표본이 바로 뉴올리언스인 것 같았다. 그 이유 때문에 한 때는 미국은 몰라도 뉴올리언스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차라리 못 가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미국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라크를 3주만에 점령하고도 자국의 도시 안 스포츠경기장의 자국시민 25,000명을 구출하는 데는 실패할 수 있을까? 세계최고의 국방비를 자랑하는 미국. 그래서 국방비 지출 2위에서 15위까지를 모두 합친 금액보다도 더 많은 국방비를 수년 째 지출해 오고 있는 미국이 국방의 기본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저토록 무관심하고 무기력할 수 있을까? 세계 최강 미국도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인가? 더러는 인종문제에서 원인을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조기 레임덕을 말한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쓰나미가 남아시아일대를 할퀴고 지나갔을 때에는 단 한 사람도 약탈당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강국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정부 상태 같은 일들을 보면 아시아인이 훨씬 더 문명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동안 우리들 스스로 무작정 따라 배우기에 급급했던 ‘미국형 인간’은 이제 기피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뉴올리언스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커먼 독수를 뒤집어 쓴 채, 그 다반사였던 Jazz도 잊고 신음하고 있다.

막 철들 무렵에 즐겨 들었던 음악이 있다. The Animals 의 ‘해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다. 이 곡은 이런 가사로 시작해서 이렇게 끝난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 They call the Rising Sun /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 And God I know I’m one 뉴올리언스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 사람들은 그 집을 해뜨는 집이라고 부릅니다. 가난에 찌든 아이들이 사는 폐허 같은 곳이죠 / 전 알아요. 나도 그 중 하나니까요”

전에 없이 이 곡을 들으면서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것은 비참한 생활상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한 가사의 내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 불사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녹아들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말하는 해뜨는 집이 절망이 아닌 희망의 해가 뜨는 집이 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