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13
음악 처방전 ('05.10.17. 정현빈) |
문학에 미친 사람처럼 살아온 한 시인이 있다. 그의 저서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를 키운 것은 진리가 아니라 길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진리를 찾아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저 다양한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그는 많은 문학인들의 기대를 안고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 수상의 근처까지 걸어갔었다. 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쉽다. 조금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처럼 묵묵히.
“좋은 음악 없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음악은 원래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산물이면서 또 때로는 그 원천이 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딱 좋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마치 병에 따라 의사의 처방전에 근거하여 먹게 되는 약처럼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 기분이 매우 우울한데 즐거워질 수 있는 음악 한 곡 추천해 달라고 한다든지 너무 들떠있어서 차분해졌으면 좋겠다든지 등의 형태로 음악 추천을 요청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금지곡’이라는 것이 있었다. 공연윤리심의를 통과해 유통중인 곡이 사후에 제재를 받게 됨에 따라 판매나 방송 등이 금지된 곡을 말하는 것으로서, 대대적인 재심사를 거쳐 한꺼번에 지정한 적도 있었고 방송심의에서 제재를 받아 자동으로 ‘방송금지곡’이 된 경우 또는 은근한 압력에 의하여 방송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곡마다 어떠한 풍의 노래이며 그 노래를 자주 듣게 되면 기분이나 생각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기분에 따라 적절한 처방이 가능하며 요구에 맞추어 음악을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금지곡’ 심의기준들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좀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안보와 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외래풍조의 무분별한 도입과 모방, 패배·자학·비탄적인 작품, 선정적·퇴폐적인 것 등을 적용하여 금지곡 여부를 판정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하나같이 금지곡이 명곡으로 기억되고 세월이 지나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깊이 애호곡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쩌면 금지곡 지정의 본래 목적은 달성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도 예술의 한 영역이라고 볼 때, 예술의 오묘한 변장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도 ‘금지곡’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슴에 간직된 음반이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걸었다. 아침이슬에 젖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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