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음악은 축구다

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27

음악은 축구다
('06. 7. 4. 정현빈)

독일월드컵축구대회에 출전했던 우리 나라 대표 팀과 스위스와의 한판 대결이 있던 날 아침, TV에서 “축구는 오늘.... 죽었다.”는 자막을 보았다. 순간, 나는 “캬!”하며 감탄했다. 쓰리고 아픈 가슴을 포근히 감싸안는 솜이불 같은 글귀였다.

히딩크의 마법이 쾌속질주를 멈춘 날, “축구는 때론, 이 남자의 능력 밖입니다.”가 가슴을 후벼파던 기억도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날 이후 아직 안절부절못하는 주위의 축구광들에게 죽은 축구는 고이 놓아주고 이제 살아 꿈틀거리는 축구를 찾아 다시 그 끓어 넘치는 열정을 불태워 못다 이룬 한과 아쉬움을 달래라고 조언도 해본다.

그런데 그 조언이 시원찮았던지 아직 공황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밉거나 바보같이 생각되지 않은 걸 보면 나 또한 유사 상황인 것 같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묘한 정을 느낀다.

그러나 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인지 그리 큰 충격을 입지는 않은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믿었던 음악인들에 대한 실망, 잔뜩 기대하고 들었다가 크게 실망한 오디오 제품들, 다른 곳에서 감동적으로 들었던 음반을 집에 와서 듣고는 전혀 다른 실망감에 치를 떨었던 기억들이 바로 엊그제 일들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직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참으로 원초적인 의문이 다시 인다. 이제껏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길 때마다 “음악은 가슴의 언어입니다.”로 모든 의문을 잠재울 수 있었는데, 이번 의문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은 것 같아 겁난다.

음악은 무엇일까? 축구인가. 이분음표, 사분음표, 때로 도돌이표까지도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경쟁하듯 극한으로 치닫다가 멋진 골인장면처럼 갑자기 감동을 안겨주는 음악. 전반전 내내 질질 끌려 다니다가도 후반전이 되면 전혀 다른 팀이 된 것처럼 경기장을 누비며 기어이 승리를 안기기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축구는 그저 그런 음악인 것처럼 들리다가도 마지막에 전혀 예기치 않았던 감동을 안겨주는 음악과 흡사해 보인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축구, 그래서 인지 지난 대회에서 4강의 성적을 거뒀던 우리는 본선진출이라는 소박한 성과에 만족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음악과 비슷하다. 똑같은 음악인데 아침에 들을 때와 저녁에 들을 때의 느낌이 서로 다르다.

물론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처럼 언제 어디서 듣던, 항상 좋은 음악도 있다. 그런 명곡 같은 축구팀이 그립다. 더 열심히 응원할 여력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여기서 붉은 악마의 함성을 멈춰야 하다니. 안타깝다.
그러나 한 가지 오랜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좋다. 음악은 축구다. 전반전부터 확실히 이기는 우리 팀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며, 그런 음악 July Morning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