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43
대통령의 애창곡 ('06. 7.25. 정현빈) |
우리나라에는 노래방이라는 특유의 유흥장소가 있다. 어떤 곳은 3대가 같이 가도 참 좋은 장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부부간이라도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도 있다. 극과 극의 한계를 초월하는 상황이라 도저히 문화수준으로 그 질을 따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까닭에 필자는 노래방을 가뭄에 콩 나듯 찾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일부러 혼자 노래방을 찾았다. 최근 화제로 떠올랐던,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이 미국 방문 때 불렀다는 노래 때문이다. 묻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한 시간이 제공됐지만 절반도 지나지 않아 나왔다. 한 곡만 서너 번 불러보고 나왔기 때문이다.
엘비스 프레슬 리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불렀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부드럽게 사랑해 줘요)’는 고이즈미 노래로도 역시 미국에게는 매우 애교 있게 들렸을 것 같았다. 그 느낌과 감흥으로 불러본 그 노래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 아른거려 지하 공간의 음습한 냉기와 함께 소름을 돋게 했다.
환갑을 넘긴지 오래인 그가 왜 애교를 떨며 그 노래를 불렀을까? 더욱더 숨막히게 한 것은 그 노래를 부른 선수가 또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 최다의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1월 75세의 나이에 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처음 공식 방문해 이 노래를 불렀고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도 70세의 고령시절에 1996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 노래를 열창했다고 한다.
그런 달콤한 노래가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막강한 권력자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노래를 불렀을까? 분명 미국 팝 음악에 심취한 애호가도 아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도 아니다. 막강하기로 둘째 셋째의 나라의 지도자들이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아무리 따져봐도 역시 국익(國益)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숨이 턱 막힌다. 우리나라입장에서 보면 일본과 중국 두 나라 모두 강대국이지만 미국에 비하면 국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국가전략 차원에서 미국과 좋게 지냄으로써 실리를 취하려는 지도자들. 나라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개인적인 모욕도 참고 감정도 억제해야 하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아직도 주변 강대국들에 비하면 약소국인 우리나라, 자주국방과 민족공조의 분위기가 날로 고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러브 미 텐더를 부를 수 있을까? 혼자 조용히 그 노래를 부르고 나왔던 노래방 앞을 지나쳤다. 밤이 되자 네온이 또 반갑게 손짓을 한다. 걱정이 새로 생겼다. 그 분의 애창곡이 ‘상록수’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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