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53
음악으로 김장하기 ('06.11.22. 정현빈) |
무슨 김장? 하겠지만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겨울나기용 김장하기 같은 것이 가을 잘 타기인 것 같다. 그것도 남들 다 가는 단풍구경을 못하고 음악으로 애환을 달래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슬픔을 간직한 우리 이웃들을 위해 오늘은 제목만으로도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Autumn leaves’로 김장하기, 즉 가을 잘 타기실습이자 단풍구경하기의 진수를 맛보고자 한다.
먼저 단풍구경을 떠나보자. 출발부터 산 입구까지의 설렘은,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의 Autumn Leaves로 맛보자. 최소한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고 마음으로부터 단풍을 맞을 준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마음으로도 떠날 수 없는 이들은 다른 방법이 있다. Andy Williams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데 창가로 흩날리는 낙엽을 생각나게 하고 Pat Boone이나 Nat King Cole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거나 은행잎이 떨어져 길바닥이 온통 노랗게 덮인 포도 위를 걷는 듯한 환상으로 인도한다.
Laura Fygi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을을 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 같다. 그녀는 가을로 가는 급행열차를 태워 준다. 너무나 힘차게 샹송을 부르던 빠뜨리샤 까스(Patricia Kaas)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릴 게 할지도 모른다.
또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Autumn Leaves는 최루탄이다. 실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면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꼭 듣고 싶다면 동짓날 밤에 들어라. 밤이 길어 실컷 울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Eva Cassidy를 들어라. 통기타 선율과 함께 전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떠나간 연인들을 서로에게 불러 모을 것만 같다.
이브 몽땅(Yves Montand)은 4-50대, 특히 폐경의 길목에서 전에 없었던 방황을 하고 있거나 정년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면 매우 위험한 곡일 수 있다. 다만, 실황음반을 통해서 이 곡을 듣게 된다면 다행히 황혼예찬이 될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가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ddie Higgins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Chet Baker는 너무나 처량하여 마치 눈이라도 내릴 것 같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트럼펫은 10분이 넘도록 눈물을 훔치게 만든다. 아무 때나 이곡을 듣지 마라. 낙엽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지 모른다. 김장 맛이 짜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