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전도사
2006. 8. 24. 23:14
연말에 듣는 레퀴엠 ('03.12.30. 순천 빌보드레코드, 정현빈) |
여기저기 분주한 발걸음들이 지천으로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심지어 갈 곳 없어 방황하는 걸음들조차 바삐 움직인다. 목표가 보이는 이들은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바쁘고 아직 하나도 제대로 이뤄낸 것이 없는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매달리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 해는 저물어가고 희망은 없어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이제 떨어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무너져 내린다. 심지어 명예와 자존심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에서 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아파트 옥상은 잠긴 지 오래고 베란다 창가에는 이 시대의 못난 아빠들의 축 처진 어깨가 빨래대신 널려있다. 가끔씩 들려오던 한숨과 탄식이 이제는 줄담배 연기처럼 연이어 피어오르고 강물에 던져지는 것이 조약돌만이 아닌, 참으로 안타깝고 침울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12월에 들어서부터 벌써 몇 번씩 레퀴엠(Requiem)을 듣게 된다. 물론 내년에는 이처럼 처절한 연말을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담금질인 것이다.
이 레퀴엠은 원래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죽은 자를 위해 만든 일종의 진혼미사곡으로, 맨 처음에 시작되는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소서)" 라는 구절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라틴어로 ‘휴식(Requies)’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니, 어쩌면 힘든 일년을 달려온 우리들 모두에게 휴식을 안겨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여러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 스스로 만가(輓歌)를 쓰는 심정으로 조금씩 써 내려가다가 끝내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지금도 여지없이 라크리모사(Lacrimosa) 부분에서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당시 빈사상태에 있었던 모차르트에게 찾아온 작곡 의뢰자는 검은 망토까지 눌러 쓴 상태였으니 틀림없는 저승사자였을 것이고 그가 완성한 끝 부분은 당연히 슬픔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을 것이고 더 이상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베르디’와 ‘구노’의 레퀴엠도 출중하며 ‘포레’의 그것은 자신의 말처럼 ‘고통스런 죽음이 아니라, 후생의 행복에 대한 갈구’같이 차라리 경건하고 편안한 기도 같다.
올 초부터 이라크 전쟁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했던 까닭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곡은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다. 이 곡은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소원을 담은 특이한 레퀴엠인 까닭에 더 자주 듣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또 이 곡은 ‘오웬(Wilfred Owen)’의 시(My subject is War, and the pity of War. The poetry is in the Pity. All a poet can do today is to warm.)를 떠올리게 하기에 필자를 진정한 평화주의자로 이끄는 곡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이 전쟁과 그 비애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또 그 처절한 아픔을 함께 느끼고 다양한 삶의 방식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전쟁을 경고하고 감시할 수 있다면 새해에는 가정의 평화, 나라의 평화, 온 세계의 평화가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