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전도사
2006. 8. 24. 23:15
음악의 즐거움을 나누어 갖자 ('02.8.11. 김영남) |

음악은 공기의 진동이다. 노래나 연주는 몸과 마음의 진동을 공기에 전한다.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혼의 진동이요, 연주는 연주가의 혼의 진동이다. 이 혼의 진동이 청중에게 전달되고 청중이 받은 진동이 감동이 되어 다시 연주가나 성악가(가수)에게 되돌아 가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공연의 완성도가 높아져 가는 것을 우리는 콘서트홀에서 종종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거나 주변 매니아들을 살펴보면, 대개 우선 클래식 음악감상부터 출발하여 경지에 이르면 대중가요나 째즈도 즐기게 된다. 그런면서 '왜 콘서트홀에서 느꼈던 감동을 집에서는 느낄 수 없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소리탐닉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엔 음반을 탐욕하게 되는데 사서 제대로 한번 듣지도 못하면서 허구헌날 음반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남편을 춘향이 이도령 반기듯 얼씨구나 반길 어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음반만 가지고는 콘서트홀의 감동을 느낄 수 없으니까 이제는 오디오를 탐욕하게 된다.
허구헌날 오디오가게를 기웃거리며 문밖으로 싸다니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남편을 집안에 들어 앉히기 위해서 어부인께서 투자라도 해준 날이면 줄줄이사탕처럼 오디오맨들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오기 일쑤이고 그러고도 사태의 심각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어부인에게, 차 내와라, 과일 내와라, 겁없이 주문을 해대니 간이 부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콘서트홀에서의 감동은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가청주파수대역만을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초두에 음악은 공기의 진동이라고 표현했다. 귀로 들을 수 없는 대역은 몸으로 듣는 것이다. 우리가 고음의 가청주파수대역에서 벗어난 범위를 재생하는 수퍼트위터를 추가했을 때, 저음이 훨씬 풍부해 졌달지, 음의 밸런스가 좋아졌달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서브우퍼를 붙인 것도 아닌데 왜 저음이 좋아졌을까? 이것은 수퍼트위터로 인하여 밸런스가 잡힌 것을 온몸으로 듣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청주파수대역으로 제한해 놓은 디지털 녹음의 CD를 들을 때보다 과거 1960년대에 RCA에서 아나로그로 녹음하여 만든 Living Stereo 레코드를 들을 때 더욱 감동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콘서트홀에서의 감동을 오디오로 재현하기 위해 투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파란색 눈화장만 짙게 했다고 해서 시원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콘서트홀과 같은 공간과 청중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콘서트홀에서의 감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무리이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즐거운 음악생활을 함으로써 콘서트홀에서와 비슷한 감동을 받아 온몸에 닭살이 돋거나 온몸을 부르르 떨어보기 위해 진공관오디오 자작을 시작해 볼 것을 권장한다.
진공관오디오는 그래도 비교적 콘서트홀에서 감동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자연스러운 음을 내주고 조금의 전기지식과 회로상식 그리고 납땜의 스킬만 몸에 익힌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자작을 할 수 있다. 진공관오디오를 자신이 직접 제작할 수 있게 되면, 바꿈질을 별로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음의 향기를 느끼면서 여유와 편안함을 얻을 수 있고 방황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어 가면서 들을 수도 있고, 실황보다도 더욱 생생한 감동을 전달해 주는, 음악성이 풍부한 오디오가 갖추어져 있으면, 자연히 음악을 즐겨 듣게 되고, 꼭 필요한 회식자리 일지라도 일차에서 끝내고 음악을 듣기 위해 곧장 집으로 가고 싶어질 것이다. 집에 가면 반겨줄 가족과 음악이 있지 않는가?
매니아여러분, 이제 그만 방황을 끝내시고 즐거운 음악생활을 시작하지 않으시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