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영화가 된 빌보드레코드의 음악

오디오전도사 2010. 2. 21. 22:32

영화가 된 빌보드레코드의 음악
('07.10.12. 정현빈)


신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날이 있다.

머리와 가슴을 다 준 것에 대한 감사다.

어쩌면 특별히 가슴을 더 크고 넓게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인지도 모른다.

때로 머리만 주었다면 어찌 이 아름다운 음악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싶고 가슴만 주었다면 매일 음악에 파묻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은둔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름다운 세상, 그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온전히 세상에 나온 그 하나의 평범함이 이토록 고마운 건 그리던 가을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라르고(Largo)로 가슴 한 비탈을 적시던 감동이 순식간에 안단테(Andante)와 알레그로(Allegro)를 건너뛰고 프레스토(Presto)로 가슴팍을 짓뭉갰다. 이러다 숨이 멎겠다 싶어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2007년 10월 6일 밤 8시, 태풍 크로사를 피해 도망 온 바다가 해운대 백사장에 퍽퍽 넘어지며 울던 그날.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출품작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상영하면서 세계의 영화팬들을 구슬처럼 꿰어가던 메가 박스 3관에 조명이 꺼지고 드디어 다큐멘터리 영화 ‘빌보드레코드’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벗기까지는 8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발가벗은 ‘빌보드레코드’가 부끄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배려를 한 것인지 희미한 조명만이 비친 가운데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가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제작과정의 어려움이나 시나리오의 유무, 출연배우 섭외에 대한 어려움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의 답변이 오선지의 음표처럼 밤을 수놓고 있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감동으로 승화되던 그날, 조용히 그리고 말없이 눈물을 머금었다. 오직 가슴, 가슴으로만.

마치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들킨 기분이랄까. 참 부끄러웠고 끝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껴야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기분을 느낄 겨를도 없이 관객들 앞에 불려나갔다. 느닷없이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대중 앞에 강하기로 자부하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흐릿흐릿 보이던 관객들 사이로 외국인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국제영화제였던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문초를 받을 시간이다.

거리거리마다 음악이 흐르는 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빌보드레코드의 문을 연 지 10년 만에 그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죄 많은 사람이 관객들 앞에 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용서를 비는 것 밖에는 없어 보였다.

“빌보드레코드 파이팅!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너무 아쉽네요. 그 소중한 공간이 없어지다니요?”

채찍을 숨긴 채 숨을 죽이며 아쉬움을 토해내던 관객들의 소중한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으로 다시 새기며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마음까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가슴의 언어가 늘 흘러 넘치는 공간, 그런 빌보드레코드를 다시 만들어 저 고마운 분들을 다시 모시자. 이미 몇 바퀴째 트랙을 돌고 있는 TUDOR LODGE의‘Help Me Find Myself’는 그 다짐을 더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주문처럼 되뇌게 한다.  

정 현 빈
http://billboard-records.com
제315호 / 음악이야기 / 0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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