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가을만 되면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다. “가을인데 왜 이렇게 책 읽을 시간이 없지?” 지난 토요일 오후 단풍구경을 가자며 조르던 친구가 한 말이다.
“가을이 뭔 독서의 계절이여 바빠 죽것구만. 겨울이 좋제.” 가을걷이로 바쁜 논두렁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순식간에 들이키던 어느 콤바인 기사의 퉁명스런 말이다.
"1년 열두 달 책과 씨름했는데 정작 손에 잡혀야 할 지금, 책이 안 보여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어느 고3학생은 이런 안타까운 하소연을 한다.
형형색색 울긋불긋 온갖 자태를 뽐내며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신록의 마지막 숨고르기가 한창인 산골짜기마다 불꽃이 만발해 있다. 단풍구경으로만 치면 참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흔히 독서하기에 좋다던 이 계절도 입장에 따라 이렇듯 천차만별이니 다 좋고 다 나쁜 것은 없는가 보다.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람의 수만큼 견해도 다양하다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전에는 적어도 한 지붕 한 가족이었다.
물론 셋방살이를 고려하면 두 가족 세 가족도 한 지붕 아래서 살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립이다 아파트다 하여 한 지붕 100가족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꼭 그렇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너무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일사분란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다.
북한 핵 문제가 그렇고 전시작전통제권 문제가 또한 그렇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가 전문가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저마다 제각각인 시각차를 실감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최근 들어 자주 깊은 사색에 빠진다. 그때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원래부터 독서보다는 사색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부쩍 높아진 하늘을 보면 분명 가을인데 여전히 극성인 모기떼를 보면 아직도 한 여름인가 싶은 생각에 골똘하다보니 사색의 깊이가 자꾸 얕아 진다.
다시 깊은 사색을 위한 몸부림을 하던 중,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 ‘데 데 린드(DE DE LIND)’의 1973년 유일작 「Io Non So Da Dove Vengo. E Non So Dove Mai Andro. Uomo E’Il Nome Che Mi Han Dato.(나는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들이 내게 지어준 이름이다.)」를 들었다.
한 번에 읽기조차 힘든 긴 제목의 이 음반은 적어도 깊이 사색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Paura Del Niente(허무의 공포)’는 7분여의 시간동안이지만 꽤 깊은 곳으로 이끈다. 거기는 아무 구분도 의미가 없었다. 천국도 지옥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