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들 하는데 독서보다는 음악감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분들에게는 가을만큼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싶다.
때마침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우리 순천 문화예술회관에도 좋은 연주회들이 많이 계획되고 있어서 더 없이 풍요롭다.
얼마 전에 어느 유명 음악인 한 분이 방송에서 인터뷰 도중에 솔직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있어서 지금도 그 것을 생각하면 야릇한 미소를 멈출 수 없다.
연주회 때마다 프로그램을 구상하는데 꽤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 때 마다 보통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쉽고 유명한 곡은 잘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관객들이 다 아는 곡은 혹시 실수를 하거나 다르게 연주할 경우에 금방 들통이 나서 여간 난처한 게 아니란다.
그리고 연주회 도중이나 종료 후에 이러쿵저러쿵 얘기들이 많아서 부담된다는 것이다. 음악인으로서 대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그 분도 ‘잘해야 본전’인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자꾸 묻어나는 미소를 주체할 수 없다.
남자들은 보통 첼로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바이올린을 더 좋아한다는데 필자는 가슴을 휘감는 중저음의 매력 때문에 콘트라베이스를 더 자주 듣는 편이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동안 줄곧 콘트라베이스 연주음반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이 음반은 지난 1991년에 발표된 거장 ‘슈트라이허(Ludwig Streicher)의 < Encores >인데 맨 마지막 곡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그 곡은 16분 48초라는 긴 곡인데 제목도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악몽(Fiebertraum eines Kontrabassisten)’으로 재미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보통사람들도 한 두 번은 들어서 알고 있을만한 곡들이 줄줄이 연주된다.
콘트라베이스 주자 입장에서 보면 혹시 잘 못 연주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심정으로 연주를 할 것이기에 ‘악몽’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심술궂게도 귀를 쫑긋하고 자주 듣게되는 곡이다. 물론 곡이 끝나면 혼자서도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하는 음반이다.
항상 현재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이라는 생각에 음반으로라도 듣고 또 들어 지글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들어왔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역동적이고도 심오한 연주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들어보고 싶은 소망을 늘 간직해 왔었다.
그런데 운명교향곡이 ‘잘해야 본전’에 해당하는 곡이었는지 좀처럼 기회가 없어서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실제 연주를 처음 보고 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지난 90년대 초에 LD로 구입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지휘의 5,6번 교향곡을 수 차례 들어 왔지만 실제 연주와는 맛이 많이 달랐다.
‘악몽’과 ‘달콤한 악몽’의 차이 바로 그것이었다. |